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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지

[제작일지] 순간들

늘 막바지라고 했지만, 6월과 7월에도 꽤 여러 번 촬영을 하였습니다.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장마가 오기 전 어느 무더웠던 날, 창신동 성곽길 중간에 있던 정자에서 태삼아저씨를 인터뷰하였습니다. 본인이 영화에 나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인터뷰를 할지 말지 많이 고민하셨어요. 어릴 때 어머니와 형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어요.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정자의 주인들이신 동네 할머니들께서 인터뷰 하는 동안 수다를 참으시면서 촬영을 도와주셨어요.


<어머니>에는 부산에서 만들어진 이소선 어머니와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인 <엄마 안녕>도 나오는데요. 작년에 부산에서 첫 공연을 하고, 올해 대만에서도 공연을 했는데, 7월 중순에 부산에서 한 번 더 공연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연 전에 이소선 어머니께 인사를 드린다고, 전태일 열사 역의 백대현씨와 어머니 역의 홍승이씨께서 올라오셨어요. 두 분이 부부이신데, 바쁘셔서 따로 오셨어요.태삼이 아저씨가 백대현씨가 오셨을 때는 형이 왔다고, 홍승이씨가 오셨을 때는 엄마가 왔다고 좋아하셨어요. 누가 오는지 모르고 계셨던 어머니는 아침부터 '젊은 엄마가 온다'는 태삼 아저씨의 말에 무슨 소리냐며 이상하게 생각하셨대요. 돈도 안 될텐데 고맙고 고생이 많다면서, 바지주머니에서 오만원권 지폐를 꺼내 백대현씨에게 고기 사주라고도 하셨어요. 저희도 촬영 초기에 저 오만원 받았었는데 말이죠. ㅎㅎ 재단의 사무국장님과 기념사진도  한 방 박았어요. 제일 오른쪽이 백대현 배우님이십니다


홍언니가 오셨을 때는 맛있는 냉면을 시켜주셨어요. 사진으로 보기에도 참 맛있어 보입니다. 



제가 어머니가 집에 계신 것을 마지막으로 촬영했던 것은 7월 9일이었어요. 부산으로 희망버스가 가던 날, 어머니도 가시려고 하셨지만 몸이 안 좋으셔서 같이 가지 못하셨어요. 태감독님과 동욱씨가 희망버스와 마침 그 때 공연을 시작한 [엄마 안녕]을 촬영하러 부산에 내려갔고, 저는 어머니를 촬영하기 위해 남아있었어요. 어머니가 부산에 가셨으면 나도 희망버스에 합류했을텐데, 속으로 내심 아쉬워하면서 어머니와 수다를 떨었어요. 방바닥에 앨범이 가득 쌓여있길래 뭐냐고 물으니, 우리 작업하는데 필요할까봐 찍어가라고 내놓으셨다고 하셨어요. 어머니가 앨범 보시면서 옛날 생각하시는 모습도 촬영하고, 간간이 오신 손님 맞으시는 모습도 촬영하고, 식사하시는것도 촬영했어요. 어머니는 짬날 때마다 부산 상황을 궁금해하시면서 전화도 해보시고 신문도 보시고 하셨어요. 아이폰으로 아프리카 중계나 트위터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여드리기도 했지만, 화면이 너무 작아 보시긴 어려웠어요. 부산에 가지 못한 게 마음에 많이 걸리시는 것 같았어요. 저녁이 되어서 부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 뉴스를 틀어보라고 하셨어요. 아주 간단히 한진중공업 소식이 나오길래 제가 에이 너무 조금이다 했더니, 그 정도면 많이 나온 거라며 담배를 무셨던 모습이 생생하네요. 뉴스를 보던 어머니 잠 드신 틈을 타서 <무한도전>을 보며 킥킥 대다가 어머니가 일어나신 바람에 급히 뉴스로 다시 돌렸어요. 다시 잠드셔서 저도 다시 무도를 보았지만요.


몇 주 전, 집에 있다가 어머니가 응급실로 실려가셨다는 태감독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그리고 지금도 계속 드는 생각은 '왜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을까?' 였어요. 저는 어머니가 계속 건강하실 거라 믿었나 봐요. 그래서 미뤄둔 일들, 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 많았어요. 촬영한 지 2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저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어머니에게 내 이름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건, 어머니에겐 잊지 말아야 할 그리고 외워야 할 이름들이 너무 많아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촬영이 끝나면, 말없이 카메라 뒤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끝나면, 나의 이름을 불러달라 떼쓰며, 손녀딸처럼 편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럴 시간이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아요. 손님도 찾아오지 않고, 태삼 아저씨도 안 계실 때, 촬영을 하고 일이 있어서 가려고 하면 혼자 있는 게 적적해 저희가 가는 걸 아쉬워하셨는데, 그 때도 앞으로 함께 있을 시간이 충분히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리석게도. 이렇게 갑자기 쓰러지실 줄은 몰랐어요. 다리 한 번 더 주물러드릴 걸, 그 때 좀 더 예쁘게 촬영해 드릴 걸, 갖가지 후회가 끊이지 않네요. 2년 남짓, 그것도 촬영 때문에 어머니를 뵈었던 저도 이리 후회가 밀려오는데, 태삼 아저씨와 가족분들, 또 어머니를 오랫동안 봐오셨던 분들은 어떠실까요. 모두의 기도대로, 건강하게 회복되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기도를 하는것도 어려워서.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몰라, 기도를 하다 멍하니 있곤 합니다...


간간이 이 블로그 찾는 분들 중에서 어머니 소식을 궁금해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소식을 올려야지 하면서도 못 올리고 있었어요. 태감독님이 먼저 올리셨네요. 앞으로 짧은 소식들이라도 종종 블로그에 올릴게요. 간간이 들러주세요.



창신동 어머니 댁 현관에는 지금도 어머니의 작은 신발과 지팡이가 놓여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