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손유원 2011.01.25 19:26
아주 오랜만에 태감독님과 함께 어머니 촬영을 다녀왔습니다. 저(촬영 깅)는 다른 작업 때문에 한 달 넘게 촬영을 못 갔거든요. 물론 그동안 태감독님께서 촬영하고 계셨고요. 오랜만에 가는 거라 살짝 설레기까지 했습니다. 창신동 골목을 지날 때, 햇볕에 눈 녹아내리는 소리도 듣기 좋았고요.


<이소선 어머니, 나눔 아저씨 (얼굴은 영화에서 확인;;), 연출 태감독님>

오늘은 나눔 아저씨(별명)께서 어머니 안마를 해드리러 오신다고 해서 촬영을 갔습니다. 원래 계획은 2시 정도에 나눔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을 들어오시는 것부터 찍는 것이었습니다. 나눔 아저씨의 얼굴을 아는 태감독님이 골목에서 나눔 아저씨가 나타나면 신호를 주고 제가 카메라를 들고 대기하고 있다가 촬영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생각보다 일찍 나타나신 나눔 아저씨. 결국 집에 올라가시는 것부터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동안 나눔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는 처음 뵜어요. 2-30년전에 어머니와 알게 되셨고, 그 후 시간이 나실 때마다 오셔서 어머니 안마를 해드린다고 합니다. [어머니] 예고편에서 휠체어에 앉아계신 어머니에게 피리를 불어주시는 바로 그 분 입니다. 도착하자마자 주머니에서 오려진 신문 기사를 하나 꺼내 어머니에게 건네셨습니다. 기사 내용은 100세까지 산 의사가 말하는 건강 비법 그런 것이었어요. 요지는 "죽겠다, 죽겠다." 하지 말고 힘들어도 선의의 거짓말로라도 "살겠다, 살겠다."하면서 정신 건강을 먼저 챙기라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안마를 하셨습니다. 하도 두들겨 맞아서 안 아픈데가 없으시다는 어머니는 그 정성어린 안마에 너무 시원해하셨고요.


안마를 하는 동안 두 분의 대화는 노동자들 이야기부터 가수 이미자에 대한 유언비어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습니다. 농성중인 유가협에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나보다며 문자를 확인 하시는 어머니. 그러다 문자를 보고 덮으시며 하시는 말씀.

"자꾸 삼천만원 준다고..."

저 갑자기 빵 터져버렸습니다. 삼천만원 대출 가능하다는 금융 광고 문자를 보고 아는 사람이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레 대꾸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뭐랄까....나눔 아저씨는 그게 스팸문자라고 설명하시는데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어머니와 나눔아저씨는 그동안 조용히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 갑자기 "풉"고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고 있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셨고요. 카메라는 휘청휘청. 무례하게 보일까봐, 또 이 장면을 나중에 살리려면 웃으면 안 된다고 혀를 깨물고 참아보았지만,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ㅠ 이미 나눔 아저씨와 어머니의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갔는데 말이죠. 결국 카메라 위치를 바꾸면서 돌아서서 입술 앙 다물고 웃다가 겨우 다시 촬영. 어머니가 말씀을 재미나게 하셔서 이렇게 촬영하다가 웃음이 날 때가 많은데, 그 때마다 카메라 들고 바들바들 웃음 참아야해서 힘들어요. 

그럼, 다음에 또 촬영후기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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