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작일지

이제 겨울,

11월 13일이 지났습니다. 어머니는 어제 향린교회 예배까지 마치시고 비로소 편안한 시간을 맞이하셨습니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손님들과 안부전화, 그리고 오지말라고 해도 기어코 문 열고 들어오는 기자들까지. '아우 자꾸 옛날 생각나게 자꾸 물어보는데 죽겠어' 어머니의 입술이 벌겋게 부르트셨습니다. 원래 계획은 13일 전에 따로 인터뷰를 하기로 했는데 또 비슷한 질문은 한다는게 아닌거 같아 뒤로 미루었습니다. 어차피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저에게 주어진 세월은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요.

13일에는 카메라 세대를 배치해서 촬영했습니다. 어머니를 둘러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이기도 하고 어머니 인생의 반을 새롭게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팔로우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카메라 한대로 촬영할때 보다 화면들이 풍부하게 나오지 않더군요. 효율이라는 이름때문에 순간 순간 반짝이는 상황에 대한 판단을 어집럽힌 이유일거 같습니다. 그런 상황이 보인다 해도 어찌 다른 카메라의 각도를 신경 쓰면서 지금 바로 눈 앞에 벌어지는 프레임에 긴장을 놓치는 이유도 있었던거 같구요. 반성 반성 중..

어찌되었든 40주년이라는 행사(?)는 지나갔고 어머니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깊은 침잠의 시간을 가지실 겁니다. 형이 죽은 후 장남의 역할을 하며 정말 눈물 나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전태삼 형님과 함께, 그리고 유가협 어머니들과 함께 창신동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그래도 어머니를 기억하고 따뜻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몇몇의 젊은이들과 함께... 놓치지 않겠습니다.

오랫동안 촬영해 본 결과 어머니가 사람들을 대할땐 일정정도의 패턴이 있더군요. 목사님이나 스님등 종교인을 만날때는 배꼽인사, 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난땐 따뜻하고 긴 포옹, 유가협 어머니들을 오랜만에 만날땐 포옹과 함께 부비부비, 장관이나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만날땐 나몰라라... 그리고 정친인들 만날땐 포옹 후 가만이 쳐다보다 한대 칩니다. 잘 하라는 뜻이겠지요. ^^




지난 10월 30일. 전태일 문화제때 어머니 등장 전에 상영되었던 영상입니다.
다같이 '어머니'라는 노래를 불러보게할 생각이었는데
저는 촬영중이어서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는 기억이 안나네요. --;;



'제작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작일지] 나눔 아저씨와 삼천만원  (5) 2011.01.25
느릿하지만 여전히,  (2) 2010.12.21
전태일의 序  (2) 2010.11.01
나만의 진실, 그 두께...  (3) 2010.09.04
한일병원 520호  (8) 2010.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