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 太 - 2010.08.24 01:14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간지를 때, 그리고 몽글 몽글 입 속에서 나오는 입김을 바라보고 있을 때, 세상의 모든 사물이 빠르게 땅 속으로 피난가기 시작할 때, 뇌는 빠르게 움직이고 가슴은 날씨에 비해 뜨거워지죠. 근대 요즘같이 뜨거운 여름은 사람의 감성에 끈적한 비닐을 씌어 놓는거 같습니다.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도 온 몸에 스물거리며 흐르는 땀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니까요. 그래서 여름에는 웬만하면 편집을 잘 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밀려 있는 작업도 뒤로 미루기 일쑤였습니다. 부산영화제 작업때문에 연 이년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 제 뇌속에 남아있던 연유도 있구요.

저는 인터뷰라는 표현수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말(!)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것도 있고 다큐멘터리 작가가 인터뷰라는 표현수단을 제대로 쓰지 않을 경우, 진실에 대한 무책임한 방기라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죠. 물론 저의 성격 탓이 제일 크긴합니다.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걸 그리 즐겨하지 않는 편이라 카메라 뒤편에 숨어 몰래 쳐다보기만을 좋아했었죠.

이번 부산 촬영은 정말 날씨가 너무 더웠습니다. 그리고 왜 이리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에는 그림자도 제대로 지지 않는지... 참으로 부산의 도시계획이 원망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서 어디 한번 죽어보라고 썽을 내고 있는 태양을 맞으며 기껏 걸아가서 촬영을 할라치면 진이 빠져 아무 생각이 없어져 버렸지요. 이번에는 왕모링 선생님과 인터뷰를 했고 백대현, 홍승이씨 인터뷰를 했습니다. 왕선생님은 예상처럼 열정적으로 인터뷰를 해주셨습니다. 전립선암 4기 투병중이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근데 이번 촬영에서 인상깊었던 건 인터뷰이의 눈물이었습니다. 왕선생님은 이소선 어머니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을 남기실때, 연극의 주요한 씬을 생각하며 깊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소선 어머니 역할을 맡고 있는 홍승이씨는 마지막 엔딩을 생각하며 그 엔딩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뇌에 섞인 눈물을, 전태일 역할을 맡은 백대현씨는 이 연극을 끝마치고 태일이형에게 진 맘의 빚을 조금은 탕감했음 좋겠다는 눈물을 말이죠.

이 더위를 핑계 대며 인터뷰라는 것을 무덤덤하게 생각했던 저에게 이 세명의 예술가는 진심어린 열정과 집중이라는 것이 뭔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인터뷰라는 것을 그저 기계적으로 판단했던 저에게 사람의 말과 표정 그 상반신의 퍼포먼스가 주는 진실됨을 느끼게 해주었지요. 그 진실됨은 거창하고 고메한 어떤 예술적 탐닉이 아니라 자신이 그리고 있는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 애정의 형상화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었습니다. 이 막막하디 막막한 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열정'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안되는 뜨거움 말입니다.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그들의 짧은 눈물의 시간을 성찰하기 바빳던 촬영이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라는 형식이 가지는 유의미함과 '어머니'라는 작업이 이루어야 할 하나의 모델을 발견했다는 매우 소중한 성과를 낸 여정이기도 했구요. 음...

그래도 좀 시원하면 좋긴 하겠지요?



(돌아오는 길에 고신대병원에 들려 비정규직으로 20년간 조선소에서 도장 일을 하시다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으신 한 노동자를 인터뷰하고 왔습니다. 남편의 발병에 절망보다는 분노로 산재신청을 준비하시는 부인에 감동했고 배 한척이 내 눈앞에서 만들어질땐 보람도 많이 느꼈지만 결국 이런 몸둥아리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냐는 그 노동자의 한숨 섞인 눈물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줄 알았습니다. 복분자 주스라도 들고 가야할 판국에 오렌지 주스 두개를 낼름 받아 오고만 말았습니다. --;)








<저번에도 잠시 말씀 드렸던 26일날 있는 전태일 다리 이름 짓기 캠페인 웹자보 입니다. 펌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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