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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글 남기려다...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신지 40주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8월말 부터 본격적으로 이 40주년을 기억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쩌다 저도 그 행사의 영상부분에 이러저러하게 얽켜서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대학 3학년, 노뉴단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겨울의 초입이 되면 전태일이라는 이 세글자는 저의 뇌리에 떠날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불러내는 전령사 같은 존재이기도 했고, 또는 변해가는 시대에 따라 그저 연례행사 처럼 그의 이름이 되내이는 그만저만한 존재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40주년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젊었던 전태일이 꿈꾸었던 세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마마 노동자>
10년전 노뉴단 시절 수동권노동자영상패와 함께 30주기 추모 옴니버스를 만든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들었던 단편 다큐입니다. 아마 저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다큐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었던거 같습니다. 
10년전 저 어리딘 어린 여공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요?


다른 한편으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어머니가 그의 뜻을 들은지 40주년이 된 지금. 그리고 그 뜻에 맞게 살았던 40년. 근데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봅니다. 전태일이 죽어가며 어머니를 호명한 것은 어찌보면 그 끝이 보이지 않았던 암흑같은 시절에 유일하게 기댈 수 있고 온 몸으로 믿을 수 있는 인물이 어머니 밖에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후에 어머니의 삶은 어찌보면 전태일의 뜻을 따른거라기 보단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낸 어머니의 삶이 있었기에 그녀 스스로의 힘으로 가능했던건 아닐까? 모든 어머니가 이소선 처럼 살지는 못했을거라 보기 때문입니다. 이소선이라는 인물을 바라 봄에 있어 전태일이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고, 지금 제 눈에서 어머니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 또한 전태일이라는 인물이 과잉될 정도로 넘쳐 나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드는 고민입니다. 그리고 평전과 오도엽 시인의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와 민종덕의 이소선 생애사를 읽으면서 들었던 하나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생각주머니가 점점 커지기 때문에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구요.

제 나름대로 이러저러한 생각이 들때마다 낙서를 하는 구글의 제작노트에는 계속해서 물음표만 가득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랜만의 짧은 인사글 올리려 했는데 두서가 없는 글이 되었네요. 아! 조금씩 정리되어져 가는 것도 있습니다. 전체적인 색 톤은 오랜만에 골목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 받은 단풍나무의 낙엽색깔이 될 듯 합니다.(응?ㅎ) 그리고 어머니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시선도 조금은 비중있게 들어갈 듯 합니다. 이것은 단지 대중적인 시선과 눈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어리숙한 작가가 어머니와 세상을 이어주는 소통의 도구로 그리고 그러한 화법으로 표현될 거 같습니다. 음...


요 근래 많지는 않지만 몇몇 분들이 후원금들을 넣어주시고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고마운 맘을 전한다고 글 몇줄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나에게 충만한 작품을 만들어 낸다면, 내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말을 남긴다면, 그래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어머니의 삶을 제대로만 아로새길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 남기는 것으로 고맙다는 말 대신 할랍니다.






<추석날 어머니를 찾아갔었는데. 막내 전순덕씨의 가족이 와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연어를 짤라서 밥상에 올려놓고 가족이 모여 기도를 올리시더군요.
너무 가까이 가지는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가족 사랑이 가득 담긴 기도가 한참을 이어졌습니다>